마을소개


이호1동

제주시 이호1동은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이호테우해변이 있는 곳이며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는 '백개, 가몰개'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호주민센터를 중심으로 4개의(동마을, 서마을, 중앙마을, 현사마을)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민속유적으로 본향당(이호동포구)과 이호동 포제단(이호동 '남당' 서쪽)이 남아있다.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구 일주도로와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원장천을 경계로 외도동과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도두, 남쪽으로는 신 일주도로변으로 이호2동과 인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해안도로와 인접해 있다.

 자연환경

이호해수욕장과 인접하여 있고 요트경기장이 있어 여름에는 관광객과 도민이 즐기는 휴양지이며 해안도로가 통과하여 바다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도심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전원마을이다.

산업구조

1차산업의 기반위에 민박과 수상레져타운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호2동

제주시 이호2동은 신일주도로 연변과 그 남쪽 일반주거지역으로서 대동마을, 오도롱을 합친 마을이며 근래 이호해수욕장과 노형을 잇는 새로운 도로가 생겨 교통이 훨씬 유동적으로 되었고 민속유적으로는 본향당(오도마을)과 방사탑(이호검문소 남쪽)이 있으며 일반거주지에 공동주택의 신축으로 인구유입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신 일주도로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원장천을 경계로 외도동과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도두, 남쪽으로는 노형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신 일주도로변으로 이호1동과 인접 서북쪽 교통의 중심지이다.

자연환경

농업과 어업, 관광업 위주의 이호1동과는 달리 감귤 과수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에 걸맞게 자체 선과장을 가지고 있으며 제주시 유일의 해수사우나가 있어 관광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고 주택가와 농지가 구분되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산업구조

주된 산업은 1차산업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외부 인구 유입으로 2,3차 산업과 겸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순수 2, 3차 산업 종사자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일반현황


이호동 주민센터

· 위치 : (6310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백포서길 9 (이호일동)

· 주민등록 인구현황 (외국인 제외, 2019.1.31.기준)

면적
인구
통반조직
법정동명
전화번호

2,558,090.0㎡1,

026,665.0㎡(이호일동)

1,531,425.0㎡(이호이동)

1,847세대 4,524명

(남자:2,341명, 여자:2,183명)


8개통 37개반
이호 일, 이동

☎ 064-728-1545

FAX 064-728-4919

주요기관
주요기관소재지전화번호
제주시농협서부지점
제주시 항골남로 45(이호일동)064-743-0615
이호수원지
제주시 서해안로 99(이호일동)
064-742-1284

설촌유래


이호동은 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6km 어간의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이호 1동, 2동으로 나뉘는데 1동은 "동마을", "서마을", "중앙마을", "현사마을", 2동은 "대동마을", "오도마을"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속칭 "백계(흰모래가 많은 표구동네)" 라고도 불리는 본동의 설촌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70여년전(1728년쯤) 이호동 438번지에 성씨 미상의 사람이 살았는데 천재지변으로 하룻밤 사이에 모래가 뒤덮여 버려 마을이 없어졌다가 그후 박씨가 이호동 540번지에, 홍씨가 507번지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현사마을은 바닷가에 모래가 검기 때문에 속칭 "검은모살" 혹은 "덕지동" 이라 불리는데 이 현사마을 역시 본동과 같이 천재지변으로 하룻밤 사이에 마을이 매몰 되었다가 그후 1812년쯤 "정주현" 씨가 마을 바닷가 쪽에 처음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동네는 한편 논이 있기 때문에 "덕지답" 혹은 당이 있기 때문에 "남당"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동마을은 현재의 주민센터에서 일주도로를 건너 남쪽으로 약 1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호동 6개의 자연부락중 제일 작은 마을이다. "대동마을" 이란 이름은 현재 이 동네에 많이 사는 경주, 광산 김씨들이 같이 입주하여 살았던 데서 연유한 이름인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광산 김인 김윤구씨는 지금부터 약 260년전 애월읍 광령리에서 옮겨와 속칭 "과원밧(이호동 234번지)" 에 정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양씨도 이곳 "맷밧" 에 옮겨와 살았으며 마을에 "억삼이지새터" 등 지명들이 있어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내력들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편 "오도마을" 은 지금부터 약 300여년전 고전적이란 풍수사가 이 마을 886번지에 처음 정착하여 살았고 그 후 양훈장이 이 마을 893번지에 옮겨와 살면서 서당을 차려 학문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후 대동마을에 살고 있던 김씨의 후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1830년을 전후해서 이 동네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이호란 지명이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포구동네 즉 백자가 이자로 바뀌고 "덕지답" 이란 못이 있어 마치 호수 같다 하여 호자를 넣어 이호라고 불린다는 설이 있음.

마을위치


가족사